우리 생의 가장 눈부신 순간 < 화양연화 >
때로는 영화감독은 요리사와 비슷하단 생각이 듭니다.
정해진 재료로 자기 나름의 레시피를 생각해내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조리해내는...
입보다 먼저 눈을 즐겁게하는 형형색색의 요리도 있지만
오랜 세월 한결같은 맛을 빚어내는 장인들도 있지요.
왕가위감독은 아마 후자에 속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평생 하나의 이야기를 자기나 ,또 듣는 우리들이 질리지않게 변주해가며
들려주는 왕가위.
때론 액션처럼 보이고 [열혈남아,타락천사] 무협활극[동사서독]처럼 보여도
결국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 한가지 , 같은 ,또는 다른 시간과 공간속에서
엇갈려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왕가위의 영화들에 나오는 인물들의 연애 스타일은 시대를 뛰어넘어
한결 같습니다. 겉돌기만하죠. 결코 진심을 전하지못하고...
얻갈리고 주저하며 머뭇거립니다.
시간이 흐른후 깨닫고 달려가면 이미 어긋나있고...
게다가 쉬 털어버리지도 못하고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갑니다.
- 정말 문제많은 인생들입니다~ ^^
하지만 한결같이 우리 마음속의 어딘가를 건드리죠. 툭 ! 툭 ! ^^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장만옥에게 던진 불후의
작업멘트 !
"난 당신과 함께 보낸 19XX년 X월X일 X시의 1분을 잊지않고 기억하겠다"라는
구절에 가슴한구석에서의 울림을 느끼셨을겁니다.
반면 홀로 남겨진 장만옥의 " 그때 1분은 그저 1분인줄 알았는데 지금의 내겐
영원이 되었다"는 독백또한 실연의 경험을 가진이들의 공감을 자아내기
충분했었죠.
왕가위는 유독 기억이란 소재에 집착합니다.
그의 영화속 캐릭터들은 엇갈린 시간속에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야하는 천형을
기꺼이 감수하죠.-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신화의 비극의 주인공들을
연상시키기도...
못견디게 지우고싶은 기억을 떨쳐내지못해 몸부림치다가도 간직하고픈 추억이
사라져가는것에 애달파합니다. 시간이란 무한의 굴레에 얽메여있는 유한한 인간...
실연의 아픔을 벗어버리고자 과거를 잊게해주는 술 취생몽사를 마시고[동사서독]
마음의 짐을 덜어버리기위해, 연인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땅끝까지[해피투게더]
가보기도 하죠. 그들은 자유로워졌을까요? -_-
1962년 상하이.
한 연립주택에 두 가구가 이사오게됩니다.
신문편집장인 차우와 호텔에서 일하는 그의 부인.
그리고 옆집에는 일본 무역회사사장의 비서로 일하는 리첸과 그의 남편이였죠.
쉴새없이 바쁜 일상속에 익숙해져갈때쯤 차우와 리첸은 우연한 기회에
그들의 부인과 남편이 사귀고 있다는걸 깨닫습니다. 동병상련 同病相憐...
바람난 파트너들이 돌아올 기약도 없이 일본으로 떠나버리자
챠우와 리첸의 기묘한 우정(?)은 깊어져만 갑니다.
디자인을 전공한 이력탓인지 왕가위 영화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는 색채와
조명이라 생각합니다.
때론 원시적 이미지가 충만하리만치 스크린가득 원색들로 넘쳐나다가 때로는
광각렌즈로 왜곡시킨 음습한 색깔들로 홍콩의 공허하고 암울한 현실을
표현해내곤했습니다.
물론 그의 영원한 파트너 , 영상천재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닌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공도 빠트릴수없겠죠. - 하지만 도일 역시 왕가위의 영화에서
가장 빛이나는 존재인듯합니다. [모텔선인장]으로 한국영화에서도 그의 솜씨를
볼수는 있었지만 어째서 결과는...-_-;;
Happy Together 와 함께 화양연화는 왕가위+도일 의 영화중 가장 색채감이
뛰어난 영화로 평가받을만 합니다. 모노톤의 고풍스런 샹하이 건물에 대비되는
장만옥의 형형색색의 치파오(旗袍)[중국전통의상이라는군요~ ^^]들 ,
기하학적으로 까지 보이는 벽지들 , 비현실적인 호텔복도의 이미지들이 넘쳐날듯
하면서도 과잉으로 치닫지않게 갈무리하는 솜씨가 놀랍습니다.
거의 두명의 모노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영화에서 끝까지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려는 왕가위와 도일의 배려(?)덕에 지루함을 느낄 여유는
애초에 없었습니다.
직접 OST 선곡에 관여할만큼 음악을 영화에 중요한 요소로 강조하는 왕가위답게
구석구석 흐르는 음악도 매력적입니다. 리첸과 챠우의 감정변화를 따라 빠르지도
느리지도않게 녹아드는듯한 느낌의 곡들이 매혹적이였습니다.
연기는 그리 거론하고싶지않습니다.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잘해서... 제 필력으론 표현 불가입니다. ^^
그저 부연하자면 양조위, 장만옥 모두 생애 최고의 연기를 하지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PS.
화양연화 花樣年華 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란 의미라는군요.
인터뷰에서 어느 기자가 당신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냐는 질문에
아직 오지않았다고 믿고싶다는 장만옥의 대답이 기억에 남더군요.
여러분들의 화양연화는 언제셨나요 ? ^^
공식홈페이지 http://www.inthemoodforlove-wkw.com/
Yumejis Theme - 화양연화 OST